안녕 수진아.
- 글번호
- 7280
- 작성자
- 오빠가
- 작성일
- 2025.11.19 02:38
- 조회수
-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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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동생 수진이에게
안녕 수진아! 나 종현 오빠야!
이제 우리도 나이를 먹어서 함께했던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더 많았는데,
난 지금도 우리 수진이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 그 시간이 떠올라.
우린 두 살 차이다 보니 함께 했던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많았지.
그때는 보편적인 남매 사이처럼 그렇게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했었어.
가족이긴 하지만, 그때 우리는 어렸고 감정 표현에도 서툴렀으니깐.
그래도 속마음만은 서로를 소중히 여겼다는 사실은 뒤늦게 조금씩 알게 되었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어. 내 기억에는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아.
너는 고1, 나는 고3이던 그해 봄.
우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데,
넌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걸었어.
그때 거리에서 만난 선생님이 늦은 시간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손을 잡고 간다며 혼내시자,
넌 자연스럽게 내 명찰과 자신의 명찰을 보여주면서 “저는 남수진이고, 옆에 있는 사람은 우리 오빠 남종현이에요.”라고 했어.
그제야 선생님께서 시간이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라고 하셨지.
이후 우리는 그렇게 다시 집으로 함께 손을 잡고 걸었어.
그때 네가 다리가 아프다면서 업어 달라며 졸랐는데,
내 기억에는 그리 긴 거리를 가지 못했지만, 너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업고 걸었던 것 같아.
그때가 아마도 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업었던 순간이지 않았나 싶어.
2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의 너와 내가 떠올라.
유독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이유는 그 이후로 너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
성인이 된 이후, 너는 언제나 오빠인 나를 남동생처럼 챙겨주었어.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대학원에 입학하고 졸업했을 때,
그리고 박사과정을 마친 후 처음으로 강의를 나갔을 때도 넌 꼭 너의 일인 것처럼 그렇게 기뻐해 주었지.
넌 그때 오빠의 첫 강의라며 하루를 비우고 강의 때 입을 정장, 넥타이, 구두 등을 직접 사주었어.
그리고 내가 결혼했을 때도, 이후 정말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내 딸 라온이가 태어났을 때도
넌 항상 나와 함께했어.
넌 그렇게 언제나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해주었지.
그런데 정작 나는 너의 삶에서 행복했던 순간뿐만 아니라, 네가 슬프고 힘들었던 순간에도 함께하지 못했어.
미안해, 수진아.
오빠이면서도, 너의 슬픔과 아픔을 다 헤아리지 못했어.
바쁘다는 이유로 너에게 먼저 연락하지 못하고,
너의 마음이 다친 줄도 모른 채, 그냥 너는 늘 괜찮을 거라 믿어버렸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안하고, 그 모든 게 다 후회만 남아.
이렇게 먹먹한 마음과 나도 모르게 흐르는 이 눈물로도 지금의 미안함을 다 전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도 어린 시절 너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넌 종종 화가 나면 “남종현!” 하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우리 오빠”라며 부르던 네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
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네 모습과 환하게 웃으며 “오빠!” 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가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말이야.
이젠 어느 곳에서도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너를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내 추억 속에 네가 남긴 따스한 말들과 웃음은 오랫동안 기억될 거야.
수진아!
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너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구나.
그래도 사랑하는 내 동생, 수진아,
너를 향한 마음만은 어디에 있든 변하지 않을 거야.
내가 단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네가 그 어디에서라도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아픔 없이 웃으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
그리고 남겨진 우리 가족들,
엄마와 그리고 누나와 나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비록 이제는 너와 함께할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너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렇게 살아갈게.
안녕! 우리 수진이.
2025년 11월 19일
너의 오빠 종현이가.
안녕 수진아! 나 종현 오빠야!
이제 우리도 나이를 먹어서 함께했던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더 많았는데,
난 지금도 우리 수진이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 그 시간이 떠올라.
우린 두 살 차이다 보니 함께 했던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많았지.
그때는 보편적인 남매 사이처럼 그렇게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했었어.
가족이긴 하지만, 그때 우리는 어렸고 감정 표현에도 서툴렀으니깐.
그래도 속마음만은 서로를 소중히 여겼다는 사실은 뒤늦게 조금씩 알게 되었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어. 내 기억에는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아.
너는 고1, 나는 고3이던 그해 봄.
우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데,
넌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걸었어.
그때 거리에서 만난 선생님이 늦은 시간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손을 잡고 간다며 혼내시자,
넌 자연스럽게 내 명찰과 자신의 명찰을 보여주면서 “저는 남수진이고, 옆에 있는 사람은 우리 오빠 남종현이에요.”라고 했어.
그제야 선생님께서 시간이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라고 하셨지.
이후 우리는 그렇게 다시 집으로 함께 손을 잡고 걸었어.
그때 네가 다리가 아프다면서 업어 달라며 졸랐는데,
내 기억에는 그리 긴 거리를 가지 못했지만, 너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업고 걸었던 것 같아.
그때가 아마도 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업었던 순간이지 않았나 싶어.
2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의 너와 내가 떠올라.
유독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이유는 그 이후로 너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
성인이 된 이후, 너는 언제나 오빠인 나를 남동생처럼 챙겨주었어.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대학원에 입학하고 졸업했을 때,
그리고 박사과정을 마친 후 처음으로 강의를 나갔을 때도 넌 꼭 너의 일인 것처럼 그렇게 기뻐해 주었지.
넌 그때 오빠의 첫 강의라며 하루를 비우고 강의 때 입을 정장, 넥타이, 구두 등을 직접 사주었어.
그리고 내가 결혼했을 때도, 이후 정말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내 딸 라온이가 태어났을 때도
넌 항상 나와 함께했어.
넌 그렇게 언제나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해주었지.
그런데 정작 나는 너의 삶에서 행복했던 순간뿐만 아니라, 네가 슬프고 힘들었던 순간에도 함께하지 못했어.
미안해, 수진아.
오빠이면서도, 너의 슬픔과 아픔을 다 헤아리지 못했어.
바쁘다는 이유로 너에게 먼저 연락하지 못하고,
너의 마음이 다친 줄도 모른 채, 그냥 너는 늘 괜찮을 거라 믿어버렸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안하고, 그 모든 게 다 후회만 남아.
이렇게 먹먹한 마음과 나도 모르게 흐르는 이 눈물로도 지금의 미안함을 다 전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도 어린 시절 너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넌 종종 화가 나면 “남종현!” 하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우리 오빠”라며 부르던 네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
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네 모습과 환하게 웃으며 “오빠!” 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가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말이야.
이젠 어느 곳에서도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너를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내 추억 속에 네가 남긴 따스한 말들과 웃음은 오랫동안 기억될 거야.
수진아!
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너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구나.
그래도 사랑하는 내 동생, 수진아,
너를 향한 마음만은 어디에 있든 변하지 않을 거야.
내가 단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네가 그 어디에서라도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아픔 없이 웃으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
그리고 남겨진 우리 가족들,
엄마와 그리고 누나와 나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비록 이제는 너와 함께할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너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렇게 살아갈게.
안녕! 우리 수진이.
2025년 11월 19일
너의 오빠 종현이가.
